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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

스댕 시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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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어느 날, 책상에 앉으면서부터였다.

 

분침과 손목줄이 고장 난 시계를 보는데 문득 생각에 잠겼다.

 

한창 즐겨 착용하고 멋스러운,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시계였는데. 

 

지금은 덩그러니 책상 구석에 내팽겨진체, 아무도 모르게 광을 잃고 있었다.

 

그러나 아예 잊고 지낸건 아니었다. 정사각형 프레임 속 심해 같은 깊은 파란색.

 

비싸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웠고, 또 '스댕' 특유의 광이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에 좋아했다.

 

이번 여름엔 널 꼭 고쳐서 착용해주마 한지 어림짐작으로 5년은 된 것 같다.

 

난 참 이상하게도 책상에 앉는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, 유독 내 책상이 그랬다.

 

이유는 우습지만, 중-고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과 소풍 때 찍어둔 단체 사진 때문이다.

 

두꺼운 유리 아래에 위치한 그 사진 속 친구들이 그 수많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느낌이 들어서

 

책으로 가리다가 아예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. 그 유리 속 사진을 빼면 되지 않았느냐 물어볼 수 있다.

 

맞다, 근데 그 '스댕' 고장 난 시계랑 같다 할까.. 그러한 이유로 그대로 두었던 기억이 난다.

 

모든 것에 쉽게 질리고 흥미를 잃었던,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던 그 시기엔 그랬었다.

 

사진 속 친구들 얼굴 하나하나 보면서 그때 생각에 잠시 젖어있었다.

 

그대로 두었다. 그대로 둔다. 그때 추억이 영원하도록 염원하는 것 억지로 만들지 않고.

 

다들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거라는 믿음으로 책상에서 엉덩이를 뗐다.

 

 

5년은 지난 것 같다. 다시 앉아보니 '스댕' 시계와 친구들은 여전히 책상에 있었다.

 

시간의 먼지를 가득 머금은 채로, 그때 그 몇 년 전 자리를 떴던 기억이 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.

 

그렇다 그 고장 난 시계처럼, 시간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관계도 그렇다는 것.

 

불수의적, 억지로 하지 말고, 기대하지 말고,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

 

흐르자, 그저 편안히 유영하면서... 지내다 보면 지내 진다 오늘도.

 

심해, 깊은 파랑은 여전히 빛나고, 유리 속 사진들은 천천히 닳아지고 있다.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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